まとめ

【お知らせ】ステートメント:『アフター・10.12』紺野優希 X チョン・ユジン X 杉本憲相 / 서문: <애프터 10.12> 콘노 유키 X 정유진 X 스기모토 켄스케

**전시 관련된 정보는 여기서 자세히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애프터 10.12> 콘노 유키 X 정유진 X 스기모토 켄스케

애프터 10.12

/ 온다 리쿠의 소설 <Q&A>에서 어느 쇼핑센터에서 원인도 모르는 큰 재난이 벌어진다. 몇년 지나 그때 살아남은 아이가 신격화되고 사람들의 주목을 끈다. 재난 이후 신봉의 대상이 된 이 어린이는 그림을 그리는데 이 그림이 마치 부적처럼 여겨져 고가로 팔린다. 이 소녀에게 미래에서 온 동일한 소녀가 찾아와 왜 본인이 그림을 그릴 때 성(castle)을 그리는지 아냐고 물어본다. 그러고나서 (…)

// 서문으로서 ‘쓰여진다’에서, 글로 옮겼을 때의 ‘(이미) 쓰여졌다’를 향하여.

지금 이 서문은 안에 아무것도 채워지지 않는 빈터의 단계에서 쓰여졌다. 총정리가 아닌 도래할 미래에 대한 예언적인 어조로, 멀지 않은 미래에 대한 진입로로서 현재에 가져왔다.

/// 10월 12일, 기념비적인 날이 된다. 이 날은 어떤 일이 벌어지면서 기념비처럼 시간의 흐름을 응고시킨다. 늘 지나간 세월에 어떤 매듭이 생기는 그날, 이때 10월 12일은 특별한 날이 되고 지나고 나서도 그 하루를 사람들은 다시 떠올리고 간직하려고 한다. 몇 십년 흘러도 ‘그날’에 따라붙는 말은 ‘잊지 않는다’이다. (…) 먼훗날에 간직되는 과거는, 마치 하나의 풍경처럼 전체와 연결되면서도 구분되는 일부로서 부각되고 ‘그 시간’으로 멈춘다. 따라서 멈춘 시간은 어떤 특정한 시간, 즉 ‘그 시간’을 가리킨다. 쓰나미가 덮어버린 동네에 그대로 남아 있는 배는 쓰나미가 덮쳐온 시간을 간직한다. 마치 동네가 쓰나미로 여전히 덮힌 것처럼. 미래시점에 주변풍경도 바뀌고, 어린애는 크고, 극단적으로 그날을 겪어본 사람이 없을 때조차,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날’은 남겨진다. (…) 과연 무엇을 위하여?

//// 생존재(生存在/生存材)*에 대하여: (…) 우리는 인간으로 시간을 감각하고 기억과 관계를 맺는다. 잊혀지지 않는 그날은 기념비를 통해 단서로서 과거를 되돌아보게 된다. 요컨대 거기에 인간이 있기에 멈춘 시간은 동경의 대상이 되고 또 애도와 추억의 대상이 된다. 그때는 생존자가 죽고 나서는 살아남은 존재인 ‘생존재’를 보고 환기된다. 그런데 말하는 자 대신 그때를 말해주는 물건들이 서게 될 때, 거기서 단절이 생긴다. 우리가 아무리 그때를 다시 떠올리고 싶어하더라도, 이 사물만 가지고서는 과거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고 있는 사이에 재난을 겪은 도시는 그 과거를 전달할 능력 없이 아름다워지기만 한다. 거기서 지나간 일을 지나간 일로 어떻게 볼 수 있을까? (…)

*생존재(生存在/生存材): 살아있는 존재를 살아있는 물건까지 확장시켜 봄

///// 두 개의 시선으로 봐야 한다. 생과 사의 간격을 벌리지 않고, 살아있음에 죽음을, 죽음에 살아있음을 보는, 더 나아가 어떤 존재로서 시간을 바라보아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 (…) 만약 인간이 없는 세계에 기념비가 존재한다면 그 시간은 멈춘 것일까? 캐릭터는 파편화된 자기 모습을 보고 스스로 슬퍼할 수 있을까? 서울이 그려진 벽화를 인간없이 볼 때, 거기에 연민이나 한탄은 과연 나올까? (…) 10월 12일 이후에 보는 것들은 기억과 기록의 관계를 말해줄 것이다. 시작과 함께 끝으로 다가가는 오프닝이 끝나고 그 다음날, 갑자기 모든 존재가 사라지게 된다면, 바로 작품만 남겨지게 된다면, 그 작품은 의미가 없는 것일까? 그럼에도 캐릭터들이 죽은 것도 아니고 도래할 미래에 벽화가 의미를 증발시키지 않는다면, 그것들은 죽지 않은 것이 아닐까? 전시가 끝나고 다른 전시로 대체될 때, 작품이 사라지고 난 뒤에, 더 나아가 인간(일반, 그리고 관객)이 소멸되고 난 뒤에, 작품을 향한 [인간의] 시선 없이 [그것들은] 어떻게 존재할 수 있을까? 이번 전시는 ‘그’로 특정 가능한 [인간의] 시간이 아닌, 흐름에 매듭을 짓기 어려운 불명료한 시간을 ‘겨냥’한다. (…)

////// 질문, 거기에 인간의 시선이 얼마나 적용될까? (…) 이 시간을 겨냥하는 방법은 물건에 새겨진 시간에 연민과 그리움을 수반하지 않는 일이다. 파편화된 캐릭터들을 보고 죽은 것으로 본다면, 애초에 그들이 과연 살아있었을까? 지금의 서울을 기록한 벽화는 누구를 상정하고 있을까? 이때 말하는 누구란 굳이 인간에 국한되는 것일까? 인간적인 시선에서 탈피하기, 그러니까 지나간 과거의 궤적을 따르고 내면의 감성에 잠기는 것과 다른 방법을 전시를 통해 제시하고자 한다.

/////// (…) 성, 그것은 바로 그 재난에서 진열대 밑에 깔린 소녀와 거기에 같이 있던 또 다른 한 아이가 입고 있던 티셔츠에 그려진 것이다. 그 아이는 끝내 죽고 말았고 한 명은 신적인 존재로 신봉의 대상이 된다. 진열대 밑에 이 관계가 여전히 지속된다. 죽음의 외침. 그것은 소리 없이, 신적 힘으로 자리잡은 코드에서 갑자기 튀어나온다. 신의 아이가 지켜본 다른 아이의 죽음, 무의식 속에 자리잡은 죽음이, 이제 살아남은 자가 인도하는 피안의 상징으로 유통되다가 순간 죽음으로 나타난다. 살아남은 기적에 늘 죽음이 깔려 있던 것이다. 마치 진열대 밑에 죽음과 생존의 양자가 있던 것처럼,(…) 살아있음에 죽음이 다시 [죽음으로써] 살아난다. (…)

콘노 유키

*기획전시 3X3에 대한 내용은 여기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애프터 10.12> 콘노 유키 X 정유진 X 스기모토 켄스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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