まとめ

【REVIEW】静かな森は何を囁くのか:《Exhibition of Exhibition of Exhibition》/ 조용한 숲은 무엇을 속삭이는가 : 《Exhibition of Exhibition of Exhibition》(세실극장)

조용한 숲은 무엇을 속삭이는가

 

영화관에서 영화를 안 보고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꺼내볼 수 있을까. 아마 영화를 말 그대로 둘러싸는, 그러니까 영화의 상영방식과 같은 외적인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보면 이번에 열린 《전시의 전시의 전시》 또한 스크린 상의 영상자체보다 그것과 관련한 틀에 눈을 돌릴 수 있다. 일본 속담에 ‘나무를 보고 숲을 안 본다’는 말이 있지만, 그것과 반대로 숲을 보고 나무를 안 볼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전시에서 영상작품을 본 사람이 얼마나 있는지 궁금하다. 물론 이번 기획전의 의도가 순수한 작품 감상뿐만은 아니었기 때문에 감상자들은 영화관 혹은 극장이라는 틀에 대해 생각할 수 있었다. 그런데 한편으로 사람들이 실제로 극장에 가지 않아도 기획에 관련한 이야기를 나누려고 하는 것 같다. 전시의 작동논리에 관심을 갖는 나머지, 사람들은 거기서 진행되는 프로그램을 실제로 안 보고서 전시에 대한 얘기를 할 수 있다. 필자 또한 마지막날에 가보지 않았어도 이번 전시에 대한 이야기를 어느 정도 꺼낼 수 있었다. 왜냐면 이때 주목하는 포인트가 상영작에 대한 부분이 아니라, 전시의 작동논리에 대한 질문―더 단순히 말해 “전시란 뭘까?”―이기 때문이다. 그런 맥락에서 보면 각 주제에 따른 상영프로그램에 필자 본인이 참석하지 못했으므로 개별 작품은 물론 프로그램 전체를 여기서 언급할 수 없다. 혹은 언급을 해봤자 안 본 사람들이 하는 뻔한 얘기만 꺼낼 수 있을 것 같다. 필자는 여기서 각 작품도 아니며 또한 전시의 컨셉이나 구성도 아닌 부분에서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일반적으로 중요하게 여겨지는 전시의 그러한 요소들이 무화되는 지점, 바로 24시간 상영 프로그램을 통해 무엇―짐작되시겠지만 ‘틀’―을 보았는지 이야기하고 싶다.

24시간이란 말은 일차적으로는 사람들에게 인내를 요구하는 것처럼 보인다. 한 시간도 아니고 24시간, 하루의 모든 시간이 그 한 단어에 포함되어 있다. 그런데 이차적으로는 시간성이 무화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바로 ‘언제든지’의 뜻을 지닌다. 오늘날 편의점이나 안내센터에 자주 붙는 수식어인데 이때 상정되는 것은 거기서 응대를 도와주는 사람과 그곳을 찾아가거나 연락하는 사람이 서로의 시간을 신경 쓸 필요가 없어진 사실이다. 약속된 시간, 미리 합의가 된 시간과 달리, 이번 전시에서 약속된 것은 어쩌면 거기서 50개 작품들이 상영된다는 대략적으로 정해진 언약일지도 모른다.

바로 이 특성 때문에 필자는 전시를 찾아갈 수 있었다. 끝내야 될 일을 마치고 9시를 지났었지만, 그럼에도 영상들이 거기에 보여진다는 사실에 극장을 찾아갔었다. 일반적으로 6시에 문을 닫는 전시공간과 달리, 24시간 동안 상영된다는 사실은 필자를 포함한 관람자에게 위안을 제공한다. 언제 가도, 그리고 본인이 원하든 원치 않든간에 거기에 영상이 있다는 전제 때문에 안도감을 얻는다. 그 편안함에 잠시 앉아서 영상을 보는데, 문득 영화를 한 채널로 계속 방송하는 프로그램이 생각났다. 처음에 한국에 와서 놀랐던 것 중의 하나였는데, 거의 광고도 없이 방송이 계속되는 채널은 뉴스에서 시작해서 드라마, 개그, 기타 다른 프로그램이 광고를 끼면서 잇따라 방송되는 일본 방송 프로그램과 많이 다르다. 한 채널에 영화만―다른 게임도 애니메이션 채널도 있었다―계속 나오는 것을 보고 시간적 감각이 마비되었던 애당초의 경험과 기억이 되살아났다.

다만 TV 시간표와 달리, 《전시의 전시의 전시》에서 관람객은 랜덤한 흐름에 모든 것을 맡긴다. 상영 시간표도 없이 상영되는 영상들은 도박과 같은 매력이 있다. 다음에 더 흥미로운 작업이 나올지도 (정말) 모르는 기대감은, 의자를 언제든지 떠나도 되는 조건과 함께 계속 있고 싶은 조건으로서 또한 주어졌었다. 더글러스 고든(Douglas Gordon)의 작업 <24시간 사이코>(1993)에서 원작이 24시간으로 팽창되었다면, 24시간 랜덤 상영 프로그램에서 관람자가 예술작품을 보는 기대를 팽창시켜준다. 이때, 사람들은 ‘어떤 예술작품’이 아닌, ‘예술작품들’을 감상하는 태도로 극장을 찾아간다. 못 본 작업도 포함되고 이미 여러 번 본 작업, 심지어 원하지 않는 작업도 상영되는 사실이 전제된다. 그렇다면 이 프로그램에서 관람객은 영상을 둘러싼 틀을 어떻게 볼 수 있을까?

관람객은 24시간 언제나 거기에 마음 편하게 갈 수 있다. 조나던 크래리(Jonathan Crary)의 책 제목을 빌려쓰면, ‘잠의 종말’은 잠을 못 잔다는 얘기뿐만 아니라 여기서는 ‘기존의 잠이란 개념이 바래진 상태’를 (대충) 가리킨다. 즉 내가 잠을 잘 때가 잠 자는 시간이 되고 더 이상 시간의 억류되지 않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세실극장에 사람들이 갈 때가 바로 작품을 보는 시간이 되고, 작품감상의 경험이 된다. 다만 거기서는 준비된 것, 즉 정해진 50개 작업과 랜덤으로 상영되는 제한을 따라야만 한다. 이 특징 때문에 집에서 본인이 보고 싶은 영상을 검색하고 보는 것과 달리, 일반적인 ‘전시’ 개념에 부합된다고 볼 수 있다. 즉 내가 작품을 재위치시키고 또 주제에 맞게 손을 댈 수 없이 흐름에 따라가야만 한다.

그렇기 때문에 세실극장에서 영상을 보는 안도감은 평소와 다른 타임라인에 의식의 흐름을 맡기는 일이 된다. 따라서 《전시의 전시의 전시》가 동어반복인 것처럼 24시간 프로그램 또한 전시의 차원에 머물렀다. 하지만 이것은 일본 TV 방송에서 1년에 한 번 기획되는 ‘24시간 프로그램’처럼 기획진이 구성을 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의도도 없이 작품을 단순 나열로서 보여주기 때문에 ‘순수한’ 소장품 전시에 가까웠다. 저장된 영상들을 랜덤으로 보여주기, 그것은 마치 앨범 이미지를 슬라이드 쇼로 보여주면서 가끔씩 꽂히는 이미지가 나타나는 것과 같다. 따라서 이번 기획을 통해 ‘전시’라는 말이 단순히 ‘보여준다’는 뜻이 아니라 미술관 기획에서 재위치시키는 일임을 가시화하였다. 순수 나열로 구성된 숲은 전시에서 기획과 구성이 요구된다는 이야기를 관람객에게 들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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