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Life as Freelancer]

[About: Life as Freelancer]

 

**フリーランサー/프리랜서**


アーティストとして活動するヒト・シュタイエルの論考、「その全てからの自由:フリーランサーと傭兵(Freedom from Everything: Freelancers and Mercenaries)」より。彼女は黒澤明の映画〈用心棒〉に登場する浪人を分析しながら、現代におけるフリーランサーに当てはまると述べている。君主に侍ることも無い、能力を兼ね備えた人間像。そして「雇用主から逃げ去り、ゲリラとして再度組織される、自由」を得た人間像。[Life as Freelancer – 人生はフリーランサー]は現代における様々な芸術ジャンルを中心に、作家論、作品、また展示会などの批評を行う場になる。作家は巡回展やレジダンス・プログラムで飛び回り、批評家もまた小さなオルタナティブ・スペースや新人展を見に飛び回る。両者を結ぶ共通点は、もはや生き方にもなってしまった、フリーランサーとしての姿である。

예술가로서 활동하는 히토 슈타이얼(Hito Steyerl)의 글 「그 모든 것에서부터의 자유: 프리랜서와 용병」에서 인상을 얻었다. 작가는 구로사와 아키라(Kurosawa Akira, 黒澤明) 영화 <요짐보>에 등장하는 로닌을 분석하면서, 오늘날의 프리랜서로 보고 있다. 군주를 모시지도 않고, 능력을 갖춘 인간의 모습. 그리고 “고용주한테서 도망을 쳐, 게릴라로서 다시금 조직되는 자유”를 얻은 인간의 모습. [Life as Freelancer – 인생은 프리랜서]은 여러 장르를 중심으로 오늘날의 작가론, 작품, 미술전시를 비평하는 자리가 된다. 작가는 순회전이나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날아’다니며, 비평가 또한 작은 대안공간 전시나 신인작가 전을 보러 ‘날아’다닌다. 양자를 묶어주는 공통점이란, 이제는 삶의 방식 자체가 된 프리랜서로서의 모습이 아닐까.

**恐怖の対象にしがみつく/공포의 대상을 붙들고 있기**

 

「現代音楽なんて怖くない!」という柔和政策、それは作品をあまりにも「それらしく」包み込んでしまっている。恐怖が「本当の意味で」取り去られるのは、その恐怖の根本的存在がなにかに気付いた時だけである。恐怖、それは現代における芸術作品に直面した時に表れるだろう。それを単に掴み所がないと言ってしまうか、簡単に掴めると言ってしまうかの両極端は、実は本質的には恐怖を「一時的な処方箋として」取り去るための共有された方法にすぎない。重要なのは、掴みどころのなさをいかに掴むかであり、それが評論の課題ではないか。ロザリンド・クラウス(Rosalind Krauss)によるかの有名な論考「拡張された彫刻の場(Sculpture in the Expanded Field)」では、二つの項目への否定、その中間項を概念として提示した。現代における芸術をいかに分析するかは、批評家のスタンスにも表れる。ツイッターのつぶやき、ブログの投稿、プロアマを問わないーこれは作者の知名度、評論家の自称と他称を問わない評論の時代となった。しかし、そこでどれほどまでに恐怖の対象にしがみつけているか、それがキーポイントである。

“현대음악 따위 두려울게 없다!”식의 유화정책, 그것은 작품을 매우 ‘그럴듯하게’ 포장해버린다. 공포가 ‘진정한 의미로’ 제거될 때는, 그 공포의 근본적인 존재가 무엇인지 파악했을 때뿐이다. 공포, 그것은 오늘날에 예술작품을 마주할 때 자주 나타난다. 그것을 단순히 걷잡을 데 없다고 치부할건지, 반대로 쉽게 걷잡을 수 있다고 말해버리는 양극단에서, 사실 본질적으로 공포를 ‘일시적인 처방전으로’ 제거하는 방법의 공유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걷잡을 수 없음을 어떻게 잡느냐가 문제이며, 그것이 바로 평론의 과제가 아닐까. 로절린드 크라우스(Rosalind Krauss)의 그 유명한 「확장된 조각에서의 장(Sculpture in the Expanded Field)」에서 두 항에 대한 부정, 그곳에 들어선 중간항을 개념으로 제시하였다. 오늘날에 예술을 어떻게 분석하느냐는 비평가의 태도에도 반영된다. 트윗의 혼잣말, 블로그에 게재, 전문가와 초보자를 불문하고―이제 작가의 지명도나 비평가의 자칭와 타칭을 물어보지 않는 평론의 시대가 왔다. 그런데, 여기서 어느 정도까지 공포의 대상을 계속 붙잡을 수 있을지, 그 부분이 Key Point가 된다.

**それでは何をしたらいいのか/그럼 무엇을 해야 될까?**

 

本当の恐怖は、先ほど述べた両極端に住み着いてしまうことなのかもしれない。しかしもっと恐れるべきものは、この安着を恐れるあまり、なにもアクションを起こせないことである。批評におけるフリーランサーとしてのスタンスは、地道な情報収集や、展示会を巡り歩くこと、そしてアウトプット、といった「どこまでも」実践的なものである。どこまでが芸術で、どこまでが良いアーティストなのかは、考える以前の問題なのかもしれない。私たちはピエール・ブルデュー(Pierre Bourdieu)の言うような、「身体化された資本」によって動いているだけかもしれない。もしくは、規定とカテゴライズを目の前にして、もがき苦しむのではなく、むしろ自由に生きているだけなのかもしれない。掴むものがそこにあるのから掴んだのか、いや、無いところに掴みを作ったのか。共に、掴むという行為が前提に置かれているのである。掴みを見つけたり、または作ったりする場として、このサイトが機能できればと考えている。

진정한 공포는 앞서 언급한 양극단에 안주해버리는 일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보다 더 두려워해야 될 것은 그 안착상태를 두려워하는 나머지, 어떤 행동도 못하는 일이다. 비평에 있어서 프리랜서의 태도는, 꾸준한 정보수집과 전시를 보러 다니는 일, 그리고 밖으로 산출하는 일과 같이, ‘어쨌건간에’ 실천적이다. 어디까지가 예술이며 어디까지가 좋은 예술가인지, 그 질문은 어쩌면 생각조차 안 해도 되는 문제일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피에르 부르디외가 말하는 육화된 자본의 힘으로 활동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혹은 규정과 범주화를 앞에 두고 보면서 발버둥을 치며 힘들어하지 않고, 오히려 자유롭게 생활하는지도 모른다. 걷잡을 대상이 거기에 있어서 잡았을까, 아니 없는 상태에 손잡이를 만들었을까―동일하게 잡는 행위가 전제된다. 손잡이를 발견하거나 혹은 만들어내는 자리로서 이 웹사이트가 기능되길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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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as Freelancerは、韓国ソウルで芸術の理論を学び、批評を細々と行っている、紺野優希によって立ち上げられたプラットフォームです。主にコンテンポラリー・アートをはじめ、EDMや阿部共実の漫画など、他に所属しているサイトでは載せられないテーマに触れながら、記事として残しています。日本と韓国のコンテンポラリー・アート全般を紹介ながら、興味のある作家さんについて、掘り下げて紹介できればと思っています。

Life as Freelancer는 한국 서울에서 예술이론을 공부하고 비평활동을 소소하게 하는 콘노 유키가 설립한 온라인 플랫폼입니다. 주로 동시대미술을 다루며, 그 외 EDM이나 아베 토모미(Abe Tomomi, 阿部共実)만화 등등, 다른 플랫폼에서 다루지 못한 내용 또한 기사로 올려 소개합니다. 일본과 한국 동시대미술을 소개하면서 흥미로운 작가 한 명을 깊이 있게 소개하는 자리로 만들고 싶습니다.

代表:紺野優希/콘노 유키 (2018.06.02 updated)

 

http://www.e-flux.com/journal/41/60229/freedom-from-everything-freelancers-and-mercenaries/

Hito Steyerl, Freedom from Everything: Freelancers and Mercenaries, Journal #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