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密度」という今日の遠近法:ユン・ヒャンノ(Yoon Hyangro) / ‘밀도’라는 오늘날의 원근법: 윤향로《Superflatpic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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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윤향로의 개인전<Superflatpictor>이 지난주 P21에서 열렸다. 디지털 스크린에 기초한 모티프들 회화작업을 통해 보여주는 작가는, 이번 개인전에서 무엇을 보여주는가. 필자가 오프닝에서 보고 느낀 점을 회화작업 중심으로 서술하고자 한다.

작가 윤향로는 디지털을 기반으로 이미지를 제작하되, 그 결과물을 물질적인 회화로 보여준다. 따라서 작품을 분석할 때, 디지털과 물질성 혹은―기존의 애니메이션 이미지에서 가져온 사실에 비춰보면―스틸-컷과 회화작업의 연관성을 짚어볼 수도 있다. 회화와 디지털 테크놀로지의 연관성을 조명하는 일 또한―필자에게 있어서, 역시나―상당히 흥미로운 주제이지만, 이 글에서 자세히 다루지 못하는 이유는 아마도 작업보다 필자의 역량이 부족하다는 사실이 더 큰 비율을 차지한다. 필자가 전시 <Superflatpictor>, 그 중에서 회화작업을 언급하면서 강조하고 싶은 점은 바로 모티프의 반복과 그에 따른 공간성의 창출이다. 이 글을 통해 모티프의 반복에 따른 무방향성과 이미지의 연장에 따른 방향성을 비교하면서 작가의 회화작업을 분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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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모티프 반복에 따른 무방향성

이번 전시에 포함된 회화는 작가가 애니메이션의 이미지에 가공처리를 한 뒤에 캔버스 평면으로 그린 작업이다. 작가는 포토샵의 content aware 기능을 통해서 처리된 이미지를 작품으로 옮긴다. content aware는 그 이미지 일부를 오려내거나 지정한 뒤, 그것에 포함된 요소를 복제하여 자동적으로 채우는 기능이다. 그렇기 때문에 가공처리가 된 이미지를 유심히 보면, 기존의 어떤 부분이 반복되어 나온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사진에서 풀밭 위에 누운 사람의 이미지를 제거하고 풀밭만 보이게 만들 경우, content aware 툴을 적용시키면 지정한 부분을 사진의 다른 부분에서 채울 수 있다. 이 방법을 실행한 이미지에 근거하기 때문에, 작가가 그리는 회화작업 또한 여러 부분에서 반복된 모티프를 찾을 수 있다. 이러한 특징은 전시에 사용된 두 공간 중, P2에서 시각적으로 가장 명확하게 나타난다.

이때 작품에서 반복된 모티프를 보는 관람자는, 시각적인 유사성뿐만 아니라 모티프의 위치이동의 결과를 본다. content aware 기능이 반영된 모티프가 분산되지 않았기 때문에 진흙에 빠진 발을 그 상태로 밀고 가는 듯한 효과로 인식된다. 하지만 그 기술을 사용했다는 점에 근거하여 보았을 때, 각 모티프들은 어느 하나를 기점으로 끌고 간 흔적과 다르다. 요컨대 content aware가 반영된 모티프는 제작방법부터 결과물까지 어떤 것이 먼저이고 나중인지 확실히 알 수 없게 만든다. 어쩌면 혹자는 노트북에 에러가 뜨고 드래깅(dragging)을 하면 화면에 이미지가 반복되어 증식되는 효과/오류와 같은 것으로 작품을 감상할 수도 있다. 이 경우 레이어가 새로 겹겹이 얹혀져 이미지를 이동시킨 궤적이 밑으로 쌓이게 된다. 이 이동의 흔적은 바로 커서의 움직임이자 컴퓨터 유저가 책상 위에서 마우스를 돌린 움직임이 존재했던 사실을 보여준다.

혹은 흔적과 이미지 생성의 관계를 고려할 때, 운동선수를 연속 촬영한 사진을 떠올릴 수도 있다. 뛰는 모습을 찍으면 블러가 생겨 사람이 어느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는지 시각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이 두 가지 사례 모두 시각적으로 이동을 보여주는 단서로서 기능하지만, 이때 공통적으로 수행의 이동을 기록했다는 점에서 content aware의 이미지의 반복과 완전히 다르다. 드래깅을 통해 그려진 흔적은 이미지 자체의 생산에 따른 이동이라 말할 수 있다. 한편 운동선수 사진의 경우, 이미 대상자체가 이동한다는 사실을 전제로 하고 있다. 운동에 따른 움직임의 흔적으로서 사진에 포착될 경우, 그때 ‘이미지의 증식에 따른 이동’이 아닌, ‘이동/움직임의 해체’라는 말이 더 적합하다. 따라서 윤향로의 회화작업은 모티프의 이동이 흔적으로 나타난 것과 다르다. 그의 작업은 기록된 원본 이미지가 편집된 사실로서 나타난다. 이러한 특징은 기록의 성격에서 한발 더 나선 것으로 볼 수 있는데, 이때 기록은 표현의 실현 가능성을 획득하게 된다. 즉 그 이미지는 붓질을 하듯이 손으로 그어진 방향성을 가진 움직임의 흔적이 아닌, 디지털 환경에서 실현된 방향성이 없는 반복의 결과물로 나타난다. 바로 이 부분에 디지털 환경의 편집과 회화의 친화성을 찾을 수 있다. 요컨대 “왜 디지털로 편집한 이미지를 다시 옮기느냐”는 질문에 대해, “왜 기록이 아닌 ‘이미지’라는 말을 썼느냐”로 되물어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윤향로의 작업은 운동선수 사진보다 오히려 화면에 증식된 이미지 오류에 가깝다. 왜냐하면 이미지의 생성과 수행성이 결부되기 때문이다. 운동선수 사진에 나오는 블러는 사진의 한계, 즉 움직임을 순간에 포착하기 힘들다는 사실을 동시에 보여준다. 즉 블러는 움직임의 흔적으로서 기록된다. 그와 달리 윤향로의 회화는 기록(된 것)의 표현으로 나타난다. 작가는 디지털 기술의 도움을 받아 ‘기록’으로부터 ‘표현―모티프 자체의 복제 및 변형을 포함한―’으로 한 발짝 더 나가는 가능성을 회화작업으로 보여준다. 이제 사진이 애초에 지닌 기록의 힘이, 소프트웨어를 비롯한 기술을 통해 표현의 힘을 동시에 습득하게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윤향로의 작업에서 “왜 이미지를 회화로 옮겨야만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이미지가 사후적으로 편집과 가공, 그리고 수정이 가능해지면서 기록에 따라다니던 사실성에서 표현가능성으로 진입한 오늘날의 상황을 보여준다. 요약하자면 기록은 표현의 도구(가령 콜라쥬가 그랬던 것처럼)가 아닌 표현(자체)의 바탕이 되어 회화처럼 다룰 수 있게 되었다.

2. 표면을 늘어뜨려 창출된 밀도

앞서 “왜 디지털로 편집한 이미지를 다시 옮기느냐”는 질문에 대해, “왜 ‘기록’이 아닌 ‘이미지’라는 말을 썼느냐”라고 질문으로 대답을 했지만, 그것은―문자 그대로, 그리고 바로 뒤에서 살펴보는 것처럼―질문이지 대답이 아니다. 왜냐하면 이 질문은 여기서 완벽한 답을 주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질문에 이어서 “그렇다면 왜 그 편집한 이미지로 보여주지 않느냐”는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작가의 작업은 확실히 물질적인 그림, 그러니까 물감의 느낌이 드러나 있다. 다시 고민해야 될 이러한 질문과 의문에 대해 필자는 다시 회화의 물질적 측면, 아니 오히려 그것을 받쳐주는 지지체라는 물질적 측면에서 파고들어 분석한다.

회화를 가장 그럴듯하게 보여주는 구도가 정면에서 찍는 것이라면, 작업의 사이드 부분은 감상자 시선에 쉽게 잡히지 않는다. 앞서 표면에 대해 살펴보았다면 윤향로의 작업에서 이번엔 캔버스 옆 부분에 또 다른 이동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바로 캔버스 평면에 그려진 표현이 모서리 옆 부분까지 연장되는 모습을 관찰할 수 있다. 즉 회화의 평면에 나타난 이미지가 캔버스의 깊이/두께를 따라 공간적으로 후퇴하고 있다. 드래깅의 예시에서 레이어가 창출되어 얇은 공간이 생성된다면, 캔버스 옆 부분에서 이차원적 표현이 공간으로 연장된 모습을 볼 수 있다. 표현된 이미지에서 반복에 따른 모티프가 무방향적이었다면, 캔버스 모서리 부분에서 이미지는 방향성을 가져 캔버스 두께만큼 공간을 차지하게 된다. 전자의 경우가 산발된 상황이었다면, 후자의 경우 표면에서 옆으로 드래깅을 하듯 이미지 면과 모티프의 일부분이 선적으로 당겨졌다. 이때 선으로 보이는 것은 평면의 형상들이 늘려서 당겨진 흔적 그 자체이다. 따라서 여기서 나타나는 선은 단순한 짝대기의 묘사가 아니라 이차원적 표현을 연장시켜 늘릴 때 생기는 거리와 공간을 (비록 두께가 얼마 안 되긴 하지만)캔버스의 구조를 통해 실제로 창출한 것이다.

이러한 특징 때문에 P2 전시공간에 소개된 작업은 확실히 P1 공간에 걸려 있는 회화와 결이 다르다. P1에 소개된 작업을 보면, 표면에 나타난 이미지가 옆 부분까지 확장되어 그려져 있다. 그러니까 이미지이 연장이 아닌, 이미지의 ‘연장선상’에 옆부분까지 그려져 있다. 이때 이미지는 마치 캔버스를 감싸듯이 표현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이미지가 통째로 캔버스 천에 포착되었다는 인상을 주고 있다. 이와 달리 P2에서 소개된 작업은 이미지가 캔버스 표면에만 내려앉았다가 일부분이 옆으로 쭉 당겨진 것을 보여준다. 이미지가 늘어지면서 생긴 방향성을 작가는 캔버스의 물질적 성격에서 찾아냈다. 요컨대 P2 공간의 작업은 표면에는 반복에 따른 무방향성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그 평면과 캔버스 옆 부분이 연결될 때 캔버스의 두께를 통해 방향성을 공간화시켜 보여준다. 이것은 디지털 편집과정에서 이미지를 연장시킬 때 나타나는 공간을 표면과 두께를 가진 캔버스의 물질적 성격에서 찾은, 또 다른 드래깅이라 볼 수 있다.

이때 회화의 특성과 함께 반복과 증식의 차원이 캔버스에 전개되면서 드래깅이라는 말에 다시 한 번 주목할 필요가 생긴다. 옆 모서리 부분까지 늘어난 붓질은 캔버스의 두께를, 얇은 이미지가 한 장 씩 정교하게 쌓아올려진 것처럼 보여준다. P1 공간에서, 작가가 뉴욕에서 제작한 작업이 얇게 캔버스를 덮었다면, P2 공간에서 작품의 표면은 얇은 레이어들로 밀도를 창출하고 있다. 이때 지지체인 캔버스는 이미지가 그려지는 공간 혹은 이미지 만큼 얇은 천으로 덮어놓은 지지체보다 한 발짝 더 나아간다. 바로 지지체는 어떤 환영을 보여주는 창문으로서도, 얇은 이미지를 정착시키는 지지체도 아닌, 같은 이미지들로 쌓아올려진 덩어리로 나타난다. 말하자면 회화의 평면과 그에 동반되는 환영의 효과를 거부하지 않은, 회화로서 캔버스를 물질화시켜 ‘보여준다’. 레이어는―에러가 뜬 화면에 드래깅을 하거나 포토샵이나 일러스트레이터 작업을 하면 알다시피―피상적인 것과 달리 공간성, 즉 ‘밀도’를 지닌다. 작가는 회화의 환영에 근거하면서 동시에 그것을 캔버스의 물질적 속성과 조합시킨다. 이에 따라 우리가 작품에서 보는 것은 단순한 피상성(superficiality)이라는 개념이 아니다. 윤향로의 작품은 디지털 환경 속 또다른 원근법적 깊이감인 ‘밀도’를 보여준다.

콘노 유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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